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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lounge] 창립 60주년 맞은 한국월드비전 박종삼 회장

“우리의 민간차원 후원은 이미 G4랍니다”



6·25 한국전쟁.

젊은이들에겐 역사 속 먼 얘기로 치부되는 이 사건은 한국사의 큰 아픔이었다. 당시 한 미국인은 참혹한 전쟁 속에서 부모를 잃고 굶주린 한국 어린이들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았다. 바로 밥 피어스라는 목사로 그는 한국전쟁이 시작된 1950년, 한경직 영락교회 목사와 함께 한국 고아들과 과부들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미국 오리건주에 사무실을 열고 전쟁고아들의 비참한 상황을 담은 기록영화를 보여주며 모금에 나섰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국전쟁이 계기가 돼 설립된 월드비전은 이제 전 세계 100개 국가에서 1억명의 지구촌 이웃을 돕는 NGO로 성장했다.

올해 10월로 60주년을 맞는 월드비전은 긴 세월만큼이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박종삼 한국월드비전 회장(74)은 “한국만 놓고 본다면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바뀌었다는 게 가장 의미 있는 변화”라고 목소리 높였다.

“90년 10월 ‘앞으로 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그때까지 한국은 40년 동안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90년부터 2010년까지 20년 동안은 다른 나라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국가가 됐죠. 수혜국에서 후원국으로 전환된 국가는 한국이 최초이고 대만과 함께 2개국에 불과합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한국월드비전 정기후원자 수도 꾸준히 늘어났다. 최근 10년간의 상승세는 더 놀라울 정도다. 2000년 4만1000여명에 불과했던 후원자는 지난해 36만명을 넘어섰다. 올해 40만명 돌파가 무난하리라는 전망이다. 후원액수도 1400억원에 달한다.

“월드비전 내에서 한국은 미국, 캐나다, 호주에 이어 4번째로 후원액이 많은 나라입니다. 국가차원에서의 국외 원조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민간차원에서의 후원 열기는 대단합니다.”

한국 후원자는 경기침체에도 꾸준히 증가

월드비전의 주요 사업 중 하나가 일대일 어린이결연후원사업이다. 단순히 손에 돈을 쥐여주는 게 아니라 어린이가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데 초점을 둔다. 학교나 보건소 건립, 지역사회사업에 공을 들이는 까닭이다. 그는 “50 대 50 정도의 비중이었던 국내외 후원 비율을 국외 65% 수준으로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어린이도 못 챙기면서 국외까지 챙겨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지요. 그러나 이런 논리라면 50년대 한국 어린이들은 외국으로부터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우간다를 가봤더니 빅토리아 호수 바로 옆에 살면서도 깨끗한 물을 먹지 못하고 있어요. 어린이들은 맨발로 다녀 기생충들이 몸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처절한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이들 나라의 절대빈곤 수준을 어떻게 한국과 비교하겠습니까? 한국이 도움을 받은 만큼 도와주는 게 옳지요.”

월드비전의 구호활동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지속가능한 구호라는 데 있다. 구호물자를 받는 데 의존하지 않도록 한다. 10~15년 뒤엔 구호대상지에서 반드시 철수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활동방향을 묻자 박 회장은 ‘3C’를 언급했다.

생명존중이라는 기독교(Christianity) 정신을 토대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Chil dren)과 가난한 지역사회(Community)를 살리는 데 계속 집중할 겁니다. 국제사회를 돕는 데 한국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고요.”

36년 황해도 신천생으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박 회장은 사회사업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전쟁 당시 15세였던 그는 남한이 밀리는 상황에서도 ‘황해도 고향 땅으로 돌아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미군부대 노무자로 자원해 보급물자를 나르며 전선의 최전방에 섰다.

한국전쟁 겪은 세대로 신학·사회사업에 오로지 한길



그곳에서 만난 미군 군목은 그에게 신앙과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줬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전후 복구사업에 매달리던 월드비전 창립자 밥 피어스 목사와 한경직 목사를 만났다. 굶주림과 질병, 슬픔 속에서 이들의 설교는 한줄기 빛이었다. 박 회장은 그들의 설교를 들으며 폐허 속에서도 미래를 꿈꿔왔다. 어쩌면 박 회장은 ‘거리의 소년’이었을 때부터 전쟁의 참혹함 속에 가난, 질병의 고통을 겪어온 터라 이미 월드비전의 정신을 꿰고 있었다.

박 회장은 서울대 치과대학을 나온 뒤 치과 의사의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도 봉사라는 소명을 잊지 않았다. 해방촌, 한강변의 천막촌 등 피란민들이 모여 살았던 곳을 찾아가 진료봉사를 했다. 본격적으로 사회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60년대 후반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박 회장은 미국 버지니아코먼웰스대와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사회사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자마자 미국 국무부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연락이 왔지만 심사숙고 끝에 거절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광주에서 무의탁 비행청소년 마을인 보이스타운을 세우고 청소년 구제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이 사업을 안착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귀국한 뒤 기독교계 학교인 숭실대에서 교수로 봉사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그는 교수이자 사회사업가로서 20년 이상 1인 2역 행보를 걸어왔다.

한국월드비전 회장 자리에 오른 건 2003년이다. 보통 3년 임기에 연임을 해도 6년이면 임기를 마치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월드비전 회장직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한국월드비전을 40만명 후원자가 이끄는 조직으로 키웠고 후원금도 1000억원대로 늘렸다.

“한국 후원자들은 완전 개미군단이에요. 대기업이 큰돈을 주면서 특정 사업에 써달라고 하는 요청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후원자가 몇만원씩 십시일반 후원하고 있습니다. 남을 돕겠다는 후원의 토대가 세워진 겁니다.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40년 만에 도움을 주는 나라로 변모했다는 점도 자부심을 가질 만하고요. 60년간 잘해온 것처럼 향후 60년도 전 세계 가난한 어린이들의 구제에 앞장서겠습니다.”

■ 한국월드비전의 사업은…
국내사업보다 국제개발 비중 커져



한국월드비전 구호사업은 크게 국내·국제·북한 등 3가지 부문으로 진행된다. 국내에선 전국 11개 주요도시에 종합사 회복지관을 운영하며 체계적으로 복지활동을 펼친다. 도시빈민지역과 낙후된 농촌 13개 지역에서 가정개발센터를 운영한다.

북한사업도 활발하다. 주로 식량난의 근본적인 해결이 목적이다. 94년 국내 최초로 민간차원에서 대북지원을 시작한 월드비전은 양강도 대홍단군 등 4개 지역에 씨감자 생산시설을 만들어 근본적으로 식량생산이 늘어나도록 도와주고 있다. 평안남도에 ‘꽃피는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지역개발사업장을 계획 중이기도 하다. 국제개발은 한국월드비전이 특히 공을 들이는 부문이다. 전 세계 40개국 100개 지역에서 대단위 지역개발사업을 진행 중이다. 식수, 보건위생, 농업개발, 교육 등 지속가능한 개발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목표다.

한비야 씨가 긴급구호팀장을 맡으며 알려진 국제구호사업도 월드비전의 대표 사업이기도 하다. 자연재해와 분쟁으로 고통받는 나라를 돕는다. 현재 전 세계 30개국 83개 지역에서 긴급구호사업을 진행 중이다.

월드비전을 유명하게 만든 건 일대일 어린이결연후원사업이다. 단순한 기부가 아닌 인간적인 멘토와 멘티로서의 관계를 맺게 만들어준다는 게 특징이다. 정기적으로 서신교환을 할 수 있고, 월드비전은 아동의 성장상황을 상세하게 후원자에게 알려준다. 국내 아동후원은 매달 5만원, 국외 아동후원은 3만원으로 가능하다. 현재 국내 후원자 수는 40만명에 달한다. 국제월드비전 전체적으로는 전 세계 250만명 어린이와 일대일 결연후원을 하고 있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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