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막집 흙바닥서 자고 옷 한벌로 1~2년 입고 흙탕물 걸러 마시지만 그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가난을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어…
밥을 먹지 못해서 죽어가는 아이들, 목이 마를 때 더러운 흙탕물을 마셔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항생제 처방을 받지 못해 간단한 감기로 엄마 품에서 숨지는 아이들이 있다. 오래 전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외국의 원조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처지였다. 지금 우리는 가난을 벗어났다. 그러나 세상엔 여전히 가난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을 돕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일지도 모른다.조선일보와 월드비전은 세계 최빈국 어린이들과 한국의 후원자 1만명을 연결하는 ‘사랑만이 희망입니다’ 캠페인을 시작한다. 작은 후원금이 꺼져가는 생명을 구할 수 있다.
▲ 에티오피아의 농촌지역 노노마을에 사는 아홉살 입시 가도(사진 가운데)가 지난 15일 한국 월드비전 구호팀 에“자랑할 게 있다”면서 자기 이름을 써 보였다. 하루 한 끼 먹기도 어려웠던 입시 가도는 2년 전 한국인 후원 자와 결연을 맺은 뒤부터 학교에 다닌다. 한국 사람들은 모두가 천사인 줄로 안다. /이태경 기자ecaro@chosun.com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200㎞가량 떨어진 농촌지역 노노(Nono)마을의 빈민촌. 높이가 2m에 불과한 토굴 같은 작은 집에 발이 퉁퉁 부어 제대로 걷지 못하는 디바비 아바바(29)가 살고 있다. 한쪽 눈이 먼 아홉 살 소녀 와가니 사카이, 기침을 달고 사는 두 살짜리 꼬마 다므랏 사카이가 그의 딸들이다.
집 앞에는 누르스름한 구정물이 흘렀다. 진흙을 뒤집어쓴 그릇 5개와 주전자가 흙바닥으로 된 집안에 굴러다녔고, 시커멓게 때가 탄 이불 4장이 널브러져 있었다. 엄마가 인근 시장에서 구걸해 먹고 사는 이 가족은 하루 한 끼가 고작이다. 배가 불렀던 기억이 없다. 와가니의 오른쪽 눈엔 흰자만 남았다. 2년 전 병을 앓아 한쪽 눈을 잃었다. 아바바는 딸의 눈을 볼 때마다 자신을 원망한다. 그는 "내가 못 배우고 가난해 딸의 눈을 멀게 했다"고 말했다. 먼지가 쌓인 아바바의 뺨 위로 검은 눈물이 주르룩 흘러내렸다. 아빠가 6개월 전 사고로 숨지기 전까지 이렇지는 않았다. 지난해 말 인근 대도시에 있는 병원에 딸을 데리고 갔더니 의사는 "치료할 수 있으니 병원에 자주 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이 숨진 뒤 병든 모녀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가혹했다.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처지에 병원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도 가족은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엄마는 구걸한 돈을 모아 와가니를 학교에 보내고 있다. "저도 사람이에요. 구걸을 할 때는 너무 비참해요. 그래서 와가니에게 공부를 시키는 거예요. 나처럼 살지 말라고요. 남아 있는 한쪽 눈으로라도 딸 아이가 사람 같이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혜자씨와 한국 월드비전 구호팀이 찾아간 이 마을은 가난과 질병에 찌든 곳이다. 움막 같은 집들에는 제대로 된 그릇 하나가 없다. 전기가 없으니 가전제품도 없다. 아이들은 입은 옷 한 벌이 전부다. 이곳에서 굶주림은 일상이었다. 인근 위테테마을에 사는 니구세(12)와 셸레메(9)는 구호팀이 찾아간 날도 온종일 굶고 있었다. 아이들 엄마는 "이웃 식당에서 일을 해야 음식을 얻어오는데 오늘은 일이 없었다"고 했다. 에티오피아는 지금도 5세 이하 어린이 가운데 25%가 영양실조 상태다. 초등학교 입학률은 49%다. 국민 84%가 흙탕물을 걸러 마시고 있다. 하지만 절망의 땅에도 작은 희망은 시작되고 있다. 거대한 빈민촌인 노노지역은 지난 2003년부터 한국의 도움을 받는 에티오피아 월드비전이 지역개발사업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 농업교육사업이 확산되면서 수수와 보리만 재배하던 전통적인 농업을 벗어나 채소와 사과나무를 키우는 농가가 늘고 있다. 문맹률도 50%에서 40%로 약간 개선됐고, 유아 사망률도 12.2%에서 8%로 떨어졌다. 굶주림과 질병으로 뒤덮인 땅이지만, 한국의 도움을 받는 어린이들은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 월드비전의 농업기술 담당관은 "에티오피아는 가난과 싸울 의지가 있다"라며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한국이 우리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다.
노노(에티오피아)=이석우 기자 yep249@chosun.com |